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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의 아침은 특별하다.

 

 누군가는 산에 오르고, 누군가는 바다에 간다. 길이 막히고 추워도 꾸역꾸역 해낸다. 무엇을 위해서인가 하면 바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기 위한 것이다. 그 해는 어떤 해인가? 매일 뜨던 태양이 새로워진 것이 아니다. 매일 뜨던 태양이 아닌 달이 뜨는 것도 아니다. 동쪽에서 뜨던 태양이 서쪽에서 뜨는 것도 아니며 아침에 뜨던 태양이 저녁에 뜨지도 않는다. 모두가 목을 매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감동에 젖어 바라본 그 해는 138억 년 전 태초의 우주에 빛이 있은 이래, 태양계의 공전이 안정된 이래, 지구가 23시간 56분 동안 한 바퀴를 스스로 돌기 시작한 이래,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태양력을 개력한 이래 매일 같이 지겹게 떠오르던 바로 그 해이다. 바뀐 것은 페이지가 넘어간 달력뿐이요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와 1월 1일 00시 00분 00초의 사이에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새해가 오면 다짐을 한다. 새해에는 운동을 해야지. 새해에는 더 친절해져야지. 새해에는 자기계발을 이뤄내는 훌륭한 사회인이 되어야지. 그 다짐 역시 반복된다. 2003년에 한 다짐과 2013년에 한 다짐은 조금 달랐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2013년과 2023년의 다짐에는 그 어떤 대단한 다름도 없다. 

 

 새해에는 화를 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온화한 사람이 되기로, 인상을 쓰지 않기로, 내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쉽게 성을 내지 않는 교양 있는 성품의 어른이 되기로 했다. 하지만 새해의 새 아침이 밝고 내 원대한 계획에 방해꾼들이 나타나는 순간 평소보다 더 한 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나를 방해하다니? 새로운 사람이 되기로 한 내 다짐을 무시하는 건가? 왜 이 중요한 날의 아침부터 나를 자극하는 건가?' 화를 다스리기는커녕 평소보다 분노할 구실만 많아질 뿐이었다.

 

 새로운 한 해의 새로운 다짐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그것은 더 쉬운 좌절이다. 나약한 내 의지의 발견이다. 빈곤한 내 인내심의 말로이며 부족한 내 품성의 확인이다. 피트니스클럽이 문전성시인건 1월 첫째 주뿐이고, 영어학원의 직장인 새벽반 교실은 곧 빈자리 투성이가 된다. 담배를 내가 끊기로 했었나? 배달음식을 그만 시키기로 했던가. 무엇을 위해서 누구와 약속을 했나. 의미를 잃은 다짐만 공허하게 맴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새로워야 한다.

결의를 다지고 의지를 새로이 하는 것을 아침이 찾아오는 365일 중 하루만 하는 것은 자원의 낭비다. 태양은 타오르고 지구는 돈다. 언젠가는 멈추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특별한 단 하루의 기회를 얻은 것 마냥 마음을 다잡을 매일의 새로운 아침이 있다. 내일 아침 눈을 떠 마주하는 해는 특별한 것 하나 없는 언제나의 태양이지만, 그 태양은 1월 1일 모두가 기다리던 아침의 해와도 다르지 않은 바로 그 해다. 상나라 탕임금이 구리거울을 보듯 욕실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되뇐다.

 

일신우일신.

 

꼭 40대의 입구라서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니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