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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1일 아침 서울에 경계경보가 울렸다.
훈련도 아니고 진짜 경계경보.
311 대지진의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눈을 뜨자마자 피난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1층이라 바로 지하로 내려가면 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베란다에 있던 생수를 배낭에 넣고 통조림이랑 아이 약을 챙기려는 순간이었다. 이상한 평온함에 티비를 켜니 멀쩡히 정규편성이 나오고 있었다. 창 밖에선 등교하는 학생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라꼴 정말.. 연말에 2024년을 돌아보면 정말 못 잊을 에피소드가 남겠군'하고 생각했는데 2024년의 마지막 날인 지금, 잘못 울린 공습경보 정도로는 나라꼴 경진대회에 명함 내밀기가 어림없어졌다. 한 밤에 난데없이 거짓말처럼 시작하던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로 매일 매일 목구멍까지 울화가 차올라서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았는데 며칠 전엔 심지어 180여명의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는 비행기 사고가 있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시절의 흑백 아카이브 화면에서나 보던 날들이 2024년에 매일 같이 펼쳐진다. 격동의 현대사라는 문장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날들이 있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얘기도 쓰고 싶었는데 몇 줄 적다가 다시 지웠다. 줄줄 수도꼭지처럼 글씨들을 써내려갈 수 있을 것 같지만 2024년의 정리 따위에 끼워서 쓸 수 있는 글은 아닌 것 같아서.
슬프고 우울한 얘기들 뿐이니 좋은 일도 남겨보자. 강민이는 학생이 되었다. 지금도 아빠 옷을 만지며 안겨 자는 아기 같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본인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유치원과는 다르게 확실한 사생활이라는 것이 생긴 느낌이 든다. 여전히 나는 화를 많이 내고 인내심이 짧지만 매일 잠든 아들 얼굴을 보며 나아지리라 반성한다.
또 좋은 변화가 있었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월수금은 웨이트를 화목은 수영을 토요일은 보강운동을 했다. 어깨가 망가져서 웨이트는 멈췄지만 7달째 수영을 하고있다. 작년에도 PT받으며 오른쪽 어깨가 아프곤 했다. 어깨충돌증후군인 거 같아 회사 앞 병원을 찾았다. 초면이라고 생각한 의사는 ‘이번에도 오른쪽 어깨인가요?’하고 말을 걸어왔다. 3년 전에도 왔었다고 했다. 내가 몰랐을 뿐 오른쪽 어깨는 고질병이었다. 좋은 변화가 아닌가.. 우울하다.
새해가 되고 생일이 지나면 이제 한국 나이고, 만 나이고, 글로벌스탠다드에이지고, 내란수괴 나이고 자시고 이제 나는 마흔이다. 사십이고, 불혹이다. 중년의 위기를 실감한다고 하고 싶은데 나라꼴이 너무 엉망이라 이런 작은 나의 우울을 위기라고 부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분 전 슬프고 답답하고 우울하답니다. 상처받은 늙고 귀여운 중년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2025년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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